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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은 통장을 스쳐갈 뿐"…김 할머니는 왜 월 30만원 포기했나

김인옥 기자 | 기사입력 2021/07/26 [01:13]

"기초연금은 통장을 스쳐갈 뿐"…김 할머니는 왜 월 30만원 포기했나

김인옥 기자 | 입력 : 2021/07/26 [01:13]

 

노년알바노조 준비위원회와 평등노동자회 등 노년단체 회원들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차별없는 `기초연금` 지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이번달 15일에 기초연금 30만원이 통장에 들어오면 다음달 20일 들어오는 기초생활비 생계급여에서 30만원이 공제됩니다. 그냥 통장에 25일 보관되는 것뿐입니다. 줬다 뺐는 연금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네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65세 이상의 어르신에게 매월 최대 30만원을 지급하는 복지제도다. 소득 최하위 계층에게 기초연금은 계륵같다며 불만이다.

기초연금을 받는 만큼 기초생활보장비가 삭감되기 때문이다. 최하위 소득 계층에 속하는 어르신들은 기초연금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차상위 계층만 혜택을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생계급여 1인 가구는 54만원·4인 가구는 146만원



국민의 최저 생활을 보장해주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급여의 종류에 따라 선정 기준이 다르다.

생계급여는 소득과 재산을 환산한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의 30% 이하여야 받을 수 있다. 현재 기준으로 1인 가구는 548349원, 2인 가구는 926424원, 4인 가구는 1462887원이다.

의료급여를 받으려면 중위소득 40% 이하, 주거급여는 43%, 교육급여는 50% 순이다. 4인 가구 기준으로 의료급여는 소득인정액이 195516원, 주거급여는 2194331원, 교육급여는 2438145원이다. 가구별 소득인정액에 따라 네 가지 급여 중 하나만 받을 수도 있고, 네 가지 모두를 받을 수도 있다.

이중 최하위 소득 계층에게 지급되는 생계급여는 기준액에서 자신의 소득인정액을 차감한 금액만큼 지급된다. 4인 가구의 생계급여 기준액이 1462887원이기 때문에 자신의 소득인정액이 100만원이라면 462887원이 매달 지급된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의 노인 가운데 소득 하위 70%에게 월 최대 30만원을 지급한다. 소득인정액 선정 기준이 기초생활보장제도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비 수급권자라면 당연히 기초연금 대상이 된다.

 
기초연금 포기하는 기초생활수급자 6만명



강병원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기초연금 신청을 포기한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은 5만9992명에 달한다.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 어르신 49만명 가운데 12.3%에 해당하는 숫자다. 그리고 기초연금을 포기하는 65세 이상의 기초생활수급자의 비율은 지난 2017년 9.8%에서 2018년 10.7%, 2019년 11.4%, 2020년 12.3%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최하 소득계층의 노인들이 기초연금 혜택을 스스로 포기하는 이유는 기초연금을 받은 만큼 생계급여가 삭감되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수령액도 소득인정액에 포함된다. 기초연금을 받으면 소득인정액이 늘어나고, 늘어난 소득인정액만큼 생계급여가 줄어든다. 즉 월 462887원의 생계급여를 받던 어르신이 30만원의 기초연금을 받으면 생계급여가 162887원으로 줄어드는 구조다.

만약 기초연금을 받아 기초생활보장 대상에서 탈락하게 되면 손해가 더 크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는 복지급여 외에도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생계·의료급여 대상자는 10kg 쌀을 2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또 도시가스비, 전기세, 통신비, 상하수도비 감면 혜택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의료급여 혜택이다. 기초연금으로 중위소득 40%를 넘게 돼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게 되면 입원비, 진료비, 약값 등의 비용을 전부 본인이 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65세 이상 노인의 1인당 연간 진료비가 2018년 기준 448만원, 본인 부담금이 1046000원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부담이다.

가장 가난한 노인은 못 받고



기초연금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중복해서 지급하지 않도록 한 것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충성 원리 때문이다. 현재 기초생활보장 제도는 자신의 소득이나 재산, 다른 지원에도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때 지원하는 게 원칙이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 산재보험, 실업급여 등도 기초연금처럼 수급액 만큼 소득인정액이 올라가 기초생활보장 제도 혜택이 줄어들거나 아예 없어진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2019년 12월 기초연금 수령액만큼 생계급여를 공제하는 것은 기본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합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헌재는 "기초연금이 공제된다는 사정만으로 국가가 노인가구의 생계보호에 관한 입법을 전혀 하지 않았거나 그 내용이 헌법상 용인될 수 없을 만큼 불합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초연금을 지급한 만큼 생계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형평성 측면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2020년 기준 노인 빈곤률은 43.8%다. 즉 기초연금 혜택을 받는 하위 70% 노인 중에는 빈곤하지 않은 26.2%도 포함돼있다. 생계급여를 받는 65세 이상 노인들은 약 50만명으로 전체의 7% 정도다. 빈곤하지도 않은 26.2%는 기초연금의 수혜를 받고, 가장 빈곤한 7%는 제도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도 꾸준히 제도 개선 논의가 이어져왔지만 지지부진하다. 2014년 기초연금제도 시행 이후 소득인정액을 계산할 때 기초연금을 소득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수차례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 본회의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에게 생계비 10만원 추가 지급하는 방안을 담은 예산안이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했지만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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