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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안보에 '회색 코뿔소' 다가온다

김인옥 기자 | 기사입력 2022/03/31 [23:01]

한국 안보에 '회색 코뿔소' 다가온다

김인옥 기자 | 입력 : 2022/03/31 [23:01]

 정춘일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연구부소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하면서 대한민국 안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군사 및 외교안보 분야의 전문가로 명성이 높은 정춘일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연구부소장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국제 및 남북 정세에 대해 5부작의 기고문을 뉴스웍스에 보내왔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의 의미를 포함해 향후 한·미 양국의 대처방안은 물론이고 남북한을 둘러싼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의 예상되는 움직임과 그 의미를 분석하는 내용이다. 이 시리즈의 첫번째로 '한국의 안보에 회색코뿔소가 다가온다' 편을 싣는다. 정춘일 박사는 육군사관학교 36기 출신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전임강사, 국방부 정책기획관실 실무장교,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 국방부 군사혁신단 실무장교 및 과장, 육군교육사령부 전투실험처장 등을 역임했다. 대령으로 전역했다. 현재는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연구부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오늘날 한국의 안보는 시대적 대전환의 불확실성과 전략 환경의 급변 및 불투명성 등으로 지혜롭고 도전적인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블랙 스완(the Black Swan)'과 '회색 코뿔소(The Grey Rhino)'로 비유되는 상황에 처한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블랙 스완은 레바논 출신의 미국 금융전문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2001년 9·11 테러, 1987년 블랙 먼데이 등을 블랙 스완이라고 묘사하면서 널리 알려진 용어다. 원래는 검은 색깔을 가진 백조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 또는 '고정관념과는 전혀 다른 어떤 상상'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서양 고전에서 사용된 용어였다. 발생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가져오는 사건을 말한다.



회색 코뿔소는 세계정책연구소(WPI)의 소장 미셸 부커(Michele Wucker)가 2013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제시한 영어이다. 2톤에 달하는 큰 덩치와 크게 흔들리는 땅의 진동 및 소리로 인해 코뿔소가 다가오는 것은 누구나 인지할 수 있다는 점에 비유해 어떠한 위험의 징조가 지속해서 나타나 사전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을 간과해 온전히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회색 코뿔소 상황은 주로 위험 신호의 무시, 사전 위기 예방의 경시, 우선순위 설정 역량의 부족, 책임성의 결여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지적된다. 회색 코뿔소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 성격을 규정해 위기를 허비하지 말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한국판 스푸트니크 충격(Sputnik Shock)'으로 안보 지각판이 요동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에 의한 기술적 기습으로 한반도 군사력 균형이 전도되는 상황인 것이다. 북한은 군사기술혁명(Military Technical Revolution)을 통해 핵·미사일과 사이버전 능력에 기반을 둔 게임체인저 성격의 비대칭적 군사력 우위를 확보함으로써 한반도의 전략적 균형을 와해시켰다.

북한은 2025년 경 약 100기의 핵무기를 보유할 것으로 분석·예측되고 있으며, 이는 남·북 군사적 역학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 정권은 그동안 대륙간탄도미사일(화성-14/15/17), 신형 전술미사일(KN-23;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 신형 대구경 조종 방사포,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북극성-2) 등을 시험 발사했다. 남·북 군사력 균형이 북한 우세로 전환되면, 우리군의 전투 의지 위축과 군사적 옵션 제한 및 주도권 장악 곤란, 우리 주도의 자유 평화통일 난망 등 매우 불리한 안보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 북한정권은 이미 핵·미사일 능력을 대남 및 대미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한반도의 안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북한의 핵무기는 한국에게 블랙 스완이 됐고, 이제는 회색 코뿔소가 됐다. 한 때 연이은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의 개최를 계기로 한반도에도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는 기대가 한껏 부풀었으나 한반도 안보 상황은 다시 꽁꽁 얼어붙었다.

꽉 막힌 안보 난국을 뚫을 수 있는 전략적 통찰력은 없는 것일까?

미국의 국방전략 대가인 앤드루 마샬(Andrew W. Marshall)로부터 그 통찰력을 배워 장기 차원의 경쟁전략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 그는 총괄평가(Net Assessmenr) 기법을 개발해 미국의 안보·군사 경쟁력을 강화했다. 전략, 무기체계, 전력, 작전교리, 교육훈련, 군수, 획득, 자원 할당, 전력 효율성 등을 총괄적으로 경쟁국과 비교 분석 및 평가해 장기 경쟁전략 기획에 활용했다. 그는 이 기법을 적용해 냉전 기간에 구소련의 군비 출혈을 유도하는 전략을 기획, 냉전 승리에 공헌했다.

그는 1990년대부터는 중국과의 군사대결에 대비할 것을 주장, 아시아 중시 전략(Pivot to Asia)을 제시했다. 정보화 시대의 개막과 함께 미래전 대비한 전략으로서 정보혁명 기반 군사혁신(RMA)을 기획했다. 우리의 안보·군사 지도자들도 이런 전략적 통찰력을 갖고 안보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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